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대한민국 == 중화민국 내에서 국민당의 지원을 받아 활동하고 있엇으나 중화민국이 중일전쟁으로 어려워지자 살 길을 찾아 연합국에게 승인을 요청하고 같이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타진한다. 독일에게 텅스텐 채굴권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독일이 열강을 압박하는 등 도움을 받아 연합국에 가입하고 망명정부로서 승인받는다. 연합국의 일원으로서 임정 산하의 대한광복군 심리, 통역요원을 보내서 일본군의 임팔 공격에 대응해 방어전을 준비하는 영국군, 에티오피아군과 함께 싸우고 있다. 식량도 없고 무기도 없어서 싸우지 못하는 일본군에게 심리전을 벌여 일본군이 대거 항복하고 일본군에 징병된 조선인들은 광복군으로 합류하면서 병력과 물자가 늘어나고 있다. 승인 이후에는 [[내가 히틀러라니!|본격적으로 친독 국가가 되었으며]], 중국을 여러 개로 찢어서 견제하려고 생각한 디트리히의 전략적 지원을 받은 [[옌시산]]과 함께 하고 있다. 이후 연합국의 그랜드슬램 폭격으로 방공호에 들어가 있던 히로히토 천황과 군부 인사 전원이 사망하고 벌어진 일본의 내분과 독일군의 빠른 공세 덕에 원 역사보다 2년 빠르지만 같은 날짜인 8월 15일에, 김구의 선언과 함께 광복을 맞게 된다. 중국은 의견 대립으로 분열될 예정인데다가 소련은 자유 러시아와 내전 중이라 공산주의가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어 분단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독일은 여기서 중국 남북 중 하나가 너무 강해지면 약해지는 곳을 지원해주는 지렛대로 활용할 계획이기에 미래는 제법 밝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연합군이 극동에서 사용한 장비들을 인계받고 독일의 군사고문단이 파견되어 빠른 시일 내에 상당한 수준의 국방력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의 사회주의 세력은 이 세계관에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이는데 소련이 일본과 불가침조약을 넘어서 동맹을 맺어버린 순간 독립 운동계에선 이미 붕 뜬 처지가 되었고[* 이때부터 사회주의를 버리고 임정에 합류하는 여운형 같은 인물들도 있었다.] 그나마 그것은 소련이 진주만 공습이후 바로 동맹을 철회하면서 소련도 일본의 실상을 몰라서 동맹을 맺은 것이라는 변명거린 생겼지만 소련이 독소전쟁에서 패전국이 된 뒤 내전에 시달리며 극동에 신경쓸 겨를이 없고 그나마 중국 공산당도 국민당과 연합군에게 쓸려나가고 간신히 남은 세력도 서북 군벌, 신강 군벌을 이기고 정착에는 성공했으나 여전히 강국인 독일과 북중국 연방의 눈치를 봐야하고 그들이 눈감아준 범위 내에서 중화민국 쪽으로의 확장에 집중할 것으로 보이기에 역시나 한반도에 신경 쓸 수 없다. 거기다 연합군은 마침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공식 망명정부로 인정한 상태고 이미 홍군도 두들겼겠다 실제 홍군과 협력 체계가 있던 조선 의용군, 조선 독립 동맹으로 대표되는 한반도 사회주의 세력도 놔둘 이유가 없다. 즉, 임정에 전향한 김원봉 등이 아니면 중국 영내의 한국인 사회주의 세력은 마오쩌둥 참수 작전 때 이미 쓸려나갔거나 앞으로 쓸려나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이들은 원역사에서 홍군을 따라 옌안에 있었기에 홍군의 리더인 마오쩌둥도 도망치다 사살당한 상황에서 이들이라고 살아남았을 리는 없다.] 설사 종전까지 살아남더라도 나라를 뺏어간 일본과 협력한 소련의 사상을 믿는 매국노 놈들이라는 낙인이 찍혀 국내에서의 활동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이에 따라 소련이나 중국 서북부의 공산당 거점으로 도망 가거나 체념에 빠져 정부에 전향할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종막에서 소련 국제여단 소속이던 김일성이 만주 진공을 건의했으나 소련이 씹어버렸는데[* 독소전으로 이미 국력을 엄청나게 잃은데다가 미국을 등에 업은 자유 러시아와의 내전이 아직 남아있었고 독일의 영향권에 있는 만주에 김일성의 만주 진공은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또다시 제2의 독소전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었기 때문에 들어줄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김일성 및 일부 공산주의자들[* 원역사에서의 옌안파, 소련파로 추정]은 이에 분노해 만주로 탈영하다 사살되었으며 이에 따라 이 세계관에서 한반도의 분단 가능성은 없어졌다. 오히려 제대로 두들겨맞은 패전국인 신탁 통치로 일본이 분할된 상황. 이후 임정의 주석이었던 김구 임시정부 주석 자격으로 한반도로 들어왔으며, 그의 정적이었던 이승만은 정치에 배제된 상태로 미국에 남아 있는 상태[* 이는 실제 역사에서는 거꾸로였다. 김구는 주석으로 들어올 수가 없어서 결국 개인 자격으로 한국에 돌아왔다. 물론 이건 김구가 의도한 것은 아니며 이승만은 극단적으로 좌파를 혐오했기에 여운형을 위시한 중도파 사회주의 세력의 주도로 정치에서 배제된 것으로 보인다.]이며, 김구는 여운형과 서로 협력하여 독일식의 의원 내각제를 한국에 도입한다. 에필로그 시점에서는 독일의 투자와 중화연방공화국과의 밀월 속에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지만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그것이 버블경제를 일으켜 부패와 방만한 경영의 폐해에 잠식 되어간다.]] 이에 경제 고문으로 온 얄마르 샤흐트가 경제 개혁을 요구했고 대한민국 정치계에서도 이를 추진하려 했으나 재계의 반대에 부딪쳐 일부만 개혁할 수 밖에 없었다. 결국 재계는 [[잃어버린 10년|버블 경제가 붕괴 되자 완전히 박살나버렸고,]] 이후 일부나마 한 선조치와 뒤늦게나마 내놓은 대책들이 성공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오늘날에도 안정적인 투자처로 각광 받으며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가 있다고 한다.[* 이 세계관 경제에서 한국은 원역사의 일본을, 일본은 원 역사의 독일의 역사의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 아이러니.]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 version=621)] [include(틀:포크됨2, title=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d=2023-02-16 21:31:5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